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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보면 어때?
프리미어리그를 폭격하는 손흥민부터 유럽 명문 클럽에서 뛰는 젊은 선수들까지,
말 그대로 '황금세대'라는 말이 딱 어울리잖아.
실제로 얼마 전 설기현 감독님도 인터뷰에서 지금 대표팀을 황금세대라고 극찬하면서,
손흥민이 4년만 젊었어도 역대 최강이었을 거라며 엄청 기대를 표했더라고.
근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지금처럼 유럽 진출 길이 활짝 열리기 훨씬 이전,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맨땅에 헤딩하던 시절에 홀로 유럽에 넘어가 길을 닦아둔 선배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황금세대가 있었을까?
내 기억 속에서 그 거친 흙길을 가장 묵묵하고 단단하게 다져놓은 형님이 한 명 있어.
바로 2002년 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렸던
'설바우두', 설기현이야.
오늘은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잘 몰랐던
이 형님의 독한 축구 인생과 투혼에 대해 친한 형이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편하게 풀어볼게.

📋 대한민국 측면의 지배자, 설기현 프로필
본격적으로 썰을 풀기 전에,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이 형님이 얼마나 대단한 커리어를 가졌는지
한눈에 볼 수 있게 깔끔하게 요약해 줄게.
똑바로 봐봐, 이게 원조 해외파의 클래스다.
본명 / 출생: 설기현 (Seol Ki-Hyeon) / 1979년생 (강원도 정선 출신)
선수 시절 포지션: 윙어 (측면 공격수, 양발잡이)
주요 소속팀
로열 앤트워프 ➡️ RSC 안데를레흐트 ➡️ 울버햄튼
➡️ 레딩 FC ➡️ 풀럼 FC ➡️ 포항 ➡️ 울산 ➡️ 인천 유나이티드
국가대표 기록: A매치 82경기 19골
역대급 훈장: 대한민국 선수 최초 발롱도르 후보 선정 (2002-03 시즌),
2002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커리어만 보면 국내탑급이지 않을까싶어,
흔한 유럽리그 루트 아니냐고?
1979년생으로 설기현은 만 21세이던 2000년에 벨기에 로열 앤트워프 FC에 입단하며 이른 나이에 홀로 유럽 무대에 도전했어.
뛰어난 활약으로 불과 1년 뒤인 만 22세에 벨기에 명문 RSC 안데를레흐트로 이적해 리그 우승과 한국인 최초 발롱도르 후보 선정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지.
이후 만 25세가 되던 2004년에 잉글랜드 울버햄튼 원더러스 FC로 옮기며 무대를 옮겼고,
만 27세인 2006년에는 레딩 FC 유니폼을 입으며 마침내 꿈의 무대인 프리미어리거가 되어 전성기를 누렸어.
만 28세인 2007년에 풀럼 FC로 이적해 도전을 이어가다,
만 30세가 되던 2009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힐랄 SFC로 임대되어 중동 축구까지 경험하게 돼.
유럽 생활을 정리한 그는 만 31세인 2010년에 포항 스틸러스를 통해 국내 K리그로 복귀했고,
만 32세에 울산 현대, 만 33세인 2012년에 인천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해 2014년까지 팀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베테랑으로 활약했어.
그리고 만 36세가 되던 2015년 3월, 정든 그라운드를 떠나며 독했던 선수 생활의 마침표를 찍었지.
불모지라고 할만한 그 시대에 이런 활약을 했다는거지
맨땅에 헤딩으로 유럽을 개척한 굳건한 뚝심
내가 한창 학창 시절에 새벽마다 졸린 눈 비벼가며 해외 축구 중계를 챙겨보기 시작했을 때,
화면에 나오던 한국 선수는 정말 손에 꼽혔어.
요즘처럼 아시아 선수에 대한 존중이 있던 시절이 아니었거든.
벨기에 리그가 어딘지도 잘 모르던 시절,
설기현은 대한축구협회의 해외 유학 프로젝트를 통해 무작정 벨기에 로열 앤트워프에 입단했어. 말도 안 통하고 인종차별도 만연하던 그 차가운 유럽 땅에 홀로 던져진 거지.
그때 설기현이 버텨낸 스토리를 들어보면 진짜 가슴이 먹먹해져.
동료들은 패스도 제대로 안 주고, 감독은 동양에서 온 마른 선수를 신뢰하지 않았대.
하지만 강원도 정선 탄광촌 출신에,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밑에서 이 악물고 축구만 했던 설기현에게는 물러설 곳이 없었어.
남들보다 두 배로 뛰고 유럽 수비수들과 온몸으로 부딪히며 피지컬을 키웠지.
결국 벨기에 명문 안데를레흐트로 이적해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한국인 최초로 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 무대까지 밟아버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변방의 동양인 선수가 오직 실력 하나로 유럽 명문 클럽의 주전 자리를 꿰찼던 순간.
남들이 안 알아준다고 징징대기 전에 이런 독기가 있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더 대단한 건 뭔지 알아? 2002-03 시즌에는 한국 축구 역사상 최초로 세계 최고 권위의 상인 '발롱도르'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는 팩트야. 박지성도, 손흥민도 아닌 설기현이 대한민국 최초의 발롱도르 후보였다는 걸 요즘 축덕들은 잘 모르더라고. 측면에서 폭발적인 스피드로 치고 달리며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리던 이 형님의 플레이는, 유럽 현지 언론에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독보적인 무기였어.
플레이 스타일 및 강점/약점을 파고들자면,
설기현은 빠른 주력, 탄탄한 피지컬, 정교한 크로스를 겸비한 양발잡이 측면 공격수였어.
유럽 선수들과 대등한 몸싸움이 가능한 강력한 피지컬은 그의 큰 강점이었지
특히 크로스 능력은 고정운 이후 한국 대표팀에서 독보적이었고,
러닝 크로스 또한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수준!
2006년 독일 월드컵 프랑스전에서 박지성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한 크로스가 그의 능력을 잘 보여주는 예시고 187cm의 장신으로 공중볼 경합 능력도 뛰어났어
반면에, 둔탁한 퍼스트 터치와 떨어지는 축구 지능은 약점으로 지적되었지
이로 인해 골 결정력 부족이나 패스 정확도 저하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고,
2002 월드컵 당시에도 여러 차례 결정적인 찬스를 놓쳐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설거북'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사실 빠른 주력을 고려했을 때 오명에 가깝지
전 국민의 역적으로부터 영웅이 되기까지, 이탈리아전의 반전

하지만 설기현의 축구 인생이 늘 탄탄대로였던 건 아니야.
오히려 가장 화려했던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그는 대회 초반에 엄청난 비난의 대상이었어.
탄탄한 피지컬과 크로스는 좋은데, 가끔 보여주는 둔탁한 퍼스트 터치와 골 결정력 부족 때문에 축구 커뮤니티에서는 '설거북'이라며 비아냥거리기 일쑤였지.
조별리그 내내 결정적인 찬스를 놓칠 때마다 온 국민이 TV 앞에서 머리를 감싸 쥐며 설기현을 욕했어.
내가 그때 방구석에서 응원할 때도 주변 어른들이 "아이고, 설기현 저거 또 놓치네!" 하면서 혀를 차던 게 아직도 생생해.
그 어마어마한 압박감과 비난을 스물네 살짜리 젊은 선수가 어떻게 감당했을지 상상이나 가냐?
웬만한 멘탈을 가진 사람이라면 주저앉아서 경기장에 나가는 것조차 두려워했을 거야.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설기현의 뚝심과 피지컬을 끝까지 믿었고,
설기현 역시 자신을 향한 야유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들이받았어.
그리고 마침내 운명의 16강 이탈리아전,
후반 43분 0-1로 뒤지며 탈락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던 그 순간에 기적이 터지지.
이천수가 띄워준 공이 이탈리아 수비수 몸에 맞고 흐르자,
설기현이 번개처럼 왼발로 차넣으며 철벽 같던 부폰 골키퍼를 뚫고 골망을 흔들었어.
경기 88분 내내 욕을 먹던 선수가 단 한 번의 기회를 골로 연결하며 전 국민을 울린 순간.
세상의 비난을 찬사로 바꾸는 건 구차한 변명이 아니라 오직 결과뿐이다.
그 골 하나로 설기현은 한순간에 역전의 명수, 국민적 영웅으로 우뚝 섰어.
독일 월드컵 당시 프랑스전에서 박지성의 동점골을 도왔던 날카로운 러닝 크로스도 그렇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묵묵하게 제 몫을 해내던 이 형님의 플레이는 화려하진 않아도 묵직한 감동이 있었지.
남들이 둔탁하다고 놀려대도, 자기 장점인 강력한 피지컬과 크로스 능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유럽 무대와 월드컵을 지배한 거야.
핑계 대지 않는 대한민국 원조 프리미어리거의 자세

레딩 FC 시절에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 진출해 이달의 선수 후보에 오를 정도로 초반 폭풍 활약을 보여주기도 했어.
물론 커리어 후반기로 가면서 출전 기회가 줄어들고 K리그 복귀 과정에서 부상과 이적 논란으로 팬들과 매끄럽지 못했던 아쉬운 부분도 분명 존재해.
하지만 설기현이라는 축구선수가 평생 보여준 그 뚝심만큼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배워야 할 태도야.
요즘 많은 사람이 무언가 잘 안 풀리면 주변 환경을 탓하곤 하잖아.
인프라가 안 좋아서, 기회가 공평하지 않아서, 혹은 남들이 나를 시기해서 그렇다고 말이야.
하지만 설기현이 처음 벨기에와 잉글랜드 무대에 섰을 때는 지금보다 백 배는 더 열악하고 외로운 환경이었어.
동양인 윙어라는 편견에 맞서서 그 거구의 수비수들과 매 경기 전쟁을 치러야 했지.
그는 단 한 번도 조건이나 환경을 탓하며 도망치지 않았고, 묵묵히 몸으로 부딪쳐서 살아남았어.
은퇴 후에도 성균관대 감독을 거쳐 경남 FC 감독, 그리고 최근에는 유소년들을 지도하는 예능 콘텐츠 '강인한 슛팅스타'의 수장으로 활약하며 축구의 본질을 가르치고 있는 설기현 감독님.
개인기보다 팀플레이를 강조하며 묵묵히 후배들을 양성하는 그의 모습은 선수 시절 그 단단했던 모습과 똑 닮아 있어.
현재까지도 스포츠 매체를 통해 월드컵 콘텐츠를 연재하며 대중과 소통하는 그의 깊은 통찰력은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선수 시절의 독기는 이제 후배들을 향한 따뜻하고 날카로운 통찰로 이어졌다.
조건 탓하지 않고 묵묵히 제 길을 걷는 진짜 어른의 뒷모습.
인생이라는 경기장에서 지금 어떤 포지션에 서 있든 간에, 상황이 힘들다고 핑계 대며 주저앉지 마.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이 설기현이 홀로 맞닥뜨렸던 그 차가운 유럽의 잔디밭보다 더 가혹하진 않을 테니까.
설기현처럼 흔들리지 않는 뚝심을 가지고 묵묵히 네 실력을 갈고닦아봐.
세상이 아무리 널 향해 '둔탁하다'고 비웃어도, 끈질기게 버티다 보면
인생의 89분쯤에 전 세계를 침묵시킬 너만의 극적인 동점골 기회가 반드시 찾아올 테니까.
쫄지 말고, 당당하게 들이받아라!
최신 정보 및 근황 (2026년 06월 05일 기준)

최근 설기현은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를 통해 2026년 월드컵에 대한 기대감을 표명했습니다.
그는 현재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선수들을 '황금세대'로 평가하며, 손흥민이 4년만 젊었다면 역대 최강의 팀이 되었을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특히 잉글랜드와 프랑스, 일본 등 주목하는 팀들을 언급하며 월드컵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또한, '설기현의 월드컵 정주행'이라는 콘텐츠를 통해 스포츠조선 독자들에게 월드컵을 보는 즐거움을 더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설기현: 개인적인 면모 및 관련 정보

* 별명: '스나이퍼', '설바우두', '설거북'(이름에서 유래한 별명으로, 피지컬과 플레이 스타일을 나타내는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를 모두 내포) 등
* 가족: 아내 윤미 씨와의 사이에 아들 1, 딸 1
* 종교: 불교 신자
* 방송 활동: 은퇴 후에는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며 대중과 소통 '뭉쳐야 찬다', '런닝맨' 등에 출연, 최근에는 '강인한 슛팅스타'
* FC 온라인(게임) 능력치: 게임 'FC 온라인'에서는 과거 그의 선수 시절 기록을 바탕으로 능력치가 구현되어 있으며, 뛰어난 피지컬과 스피드, 공격적인 능력을 갖춘 선수로 묘사
TK 시즌으로 재조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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